설립자 회당

 

 

 

    

   진각성존(眞覺聖尊) 회당(悔堂) 대종사(大宗師)는 근현대 한국불교계에서 새 불교운동을 일으킨 인물중의 한 분으로, 회당 대종사께서는 새 불교운동의 터전으로서 진각종이라는 불교종단을 세우고, 불교정신을 중심으로 사회정화운동을 일으켰다. 회당 대종사께서 일으킨 새 불교운동은 독특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진각밀교운동이며, 진각밀교는 밀교정신을 씨줄로 하고 그의 자증설을 날줄로 한다.

   회당 대종사의 자증교설은 그가 불법을 체험하고 재해석한 내용이 중심으로 되어 있으며, 또 전통적인 밀교정신과 그의 이러한 정신 활동이 빚어낸 새로운 불교양식이면서 실천방안이다. 그 때문에 진각밀교는 전래의 불교의 형태, 특히 외형적 양식에서는 신선한 충격을 줄 만큼 혁신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국밀교의 중흥조요, 진각종(眞覺宗)의 입교(立敎) 개종조(開宗祖)인 회당 대종사께서는, 1902년 5월 10일 밝아오는 20세기의 여명과 함께 동해의 정토인 울릉도에서 법신불(法身佛)의 대 화현(化現)으로 탄생하셨다.

   출중한 용모와 지용(知勇)을 겸비한 대종사께서는 어려서부터 주위의 신망을 한 몸에 받으며 자랐으며, 일찍이 동서고금의 제(諸) 전적(典籍)들을 섭렵하여 10세 시에 이미 "마음 하나 천만을 당적하고 흰 바탕에 단청을 그린다(心一當千萬 質白畵丹靑)"는 성구를 지어 장차 성인으로서의 진면목을 짐짓 세상에 드러내 보이셨다.  

   대종사께서는 불연(佛緣)이 무르익어 전국의 명산대찰 및 일본 등지 동방(東方)의 밀교 사적(史蹟)들을 두루 살피시고, 1945년 가을부터 누겁(累劫)의 인연지인 대구 성서 농림촌에 도량(道場)을 개설하시어 숙야(宿夜)로 정진하시다가, 1946년 5월 16일 마침내 동천(東天)에 솟는 여명을 보시고 심신이 상연(爽然)함을 느끼시며 육자진언(六字眞言)의 대지(大智)를 얻어 대각(大覺)을 성취하시었다.

   이어 6월 14일 육자심인(六字心印)의 대각의 첫 법문(法門)으로서 진각종단의 개종을 선포하신 후, 대구 남산동에 금강도량(金剛道場)인 희락심인당(喜樂心印堂)을 세우시고, 서울의 호국성전(護國聖殿) 밀각심인당(密覺心印堂)을 비롯한 전국 방방곡곡에 심인성전(心印聖殿)을 지으시니, 교세(敎勢)는 전화(戰火)에 아랑곳하지 않고 욱일승천의 세(勢)로 발전하였다.

    대종사께서는 법신불(法身佛)의 대 지덕(知德)과 권지방편(權知方便)으로 새로운 시대를 다스릴 이원진리(二元眞理)와 심인진리(心印眞理)의 정법광명(正法光明)을 밝히시며, 오직 중생구제(衆生救濟)와 국가진호(國家鎭護)를 위해 진력(盡力)하시다가 문득 세연(世緣)이 다하여 1963년 10월 16일 대구 침산동의 불승도량(佛乘道場)에 이르러 "옛날에는 의발(衣鉢)이요, 이제는 심인법(心印法)이라"는 열반송(涅槃頌)을 남기시고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드시었다. 세수(世壽) 62세요, 개종(開宗) 17년이었다.

   대종사께서 심인법(心印法)을 위시한 약불(藥不), 서남(西南)의 비밀스런 법을 제자들에게 부촉하시고 법신의 만다라궁전(曼茶羅宮殿)으로 새 인연을 맺으시니, 모든 진언행자(眞言行子)와 그 후학들은 생활불교(生活佛敎), 밀교중흥(密敎中興), 현세정화(現世淨化), 심인현현(心印顯顯)의 창교이념(創敎理念)을 받들어 오늘도 그 높은 법력(法力)과 위덕(威德)을 길이 추존(追尊)하면서 영원무궁한 신앙의 귀명처로 따르고 있다.